따라비오름
은빛 억새 물결과 함께 잔잔하게 걷고 싶은 오름
11월의 제주도는 한 달 내내 걷기만 해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알록달록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은 없지만, 살랑살랑 바람 따라 춤추는 억새를 원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제주도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억새를 만날 수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따라비오름’은 올해도 어김없이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시 찾아오게 만든다.
몇 년 전과 또 다른 분위기의 따라비오름, 입구에 있던 커다란 정자가 사라졌다. 정자가 있을 때에는 따라비오름에서 내려온 뒤 항상 그 정자에 앉아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억새와 함께 시간을 보냈었는데, 지금은 달랑 벤치 두 개만 남았다. 어쩐지 억새도 많이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옛날 억새가 가득하던 정상을 상상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따라비오름은 3개의 굼부리가 있고, 그 굼부리를 가운데 두고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매끄럽게 이어져 하나의 오름을 이루는 형태다. 이렇게 올록볼록하게 형성된 굼부리 덕분에 정상에 오르면 매끄럽게 떨어지는 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도 비교적 짧다. 올라가는 길은 모두 계단이다. 비가 내린 바로 직후라 진한 색으로 물든 계단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계단을 따라 2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슬슬 정상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예전엔 이곳에서부터 펼쳐지던 황금빛물결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듬성듬성한 억새 물결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정상부에서도 억새는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왠지 누군가 일부러 베어 버린 듯한 모양이다.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너무 기대하던 억새가 없어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꿋꿋하게 아름다움 뽐내는 따라비오름의 능선을 보고 있으면, 억새가 없어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능선에 가운데에 서면 위쪽에서 볼 수 없었던 억새를 만나게 된다. 움푹 패인 오름 한 가운데에는 여전히 예전모습 그대로의 억새를 만나볼 수 있다. 혹시 태풍으로 인해 억새들이 다 꺾인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든다.
오름의 한 가운데에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는 억새를 바라본다. 사각사각 억새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는 저절로 힐링이 된다. 잠시 눈을 감고 서 있으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따라비오름의 둘레길로 내려가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여러 개의 굼부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즐기는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둘레길로 내려가는 길에서 또 다시 억새 향연이 펼쳐진다. 점점 날씨가 개이며 맑아진 날씨에 억새는 다시 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따라비오름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명한 오름이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오름으로 코로나로 인해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행 중이라면, 따라비오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 치유 받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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