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 동쪽여행지

제주오름 고요한 아름다움이 스며든 ‘물영아리’

(주)교차로-제주 2021. 9.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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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

자욱한 안개로 신비로운 제주오름


 

언젠가 비가 온 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오름인 물영아리. 가을장마가 한창이던 날 잠시 비가 멈춘 사이 아름다운 습지가 있는 물영아리오름으로 향했다.

 

그동안 물영아리 오름을 가지 않고 아껴두었던 이유는 바로 천 개의 계단 때문이었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건 자신 있었지만 계단이 많은 것을 알면서 쉽게 용기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언젠가 다리가 성할 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 앞당겨졌다.

 

사실 이날은 물영아리오름 바로 옆에 있는 수망리 마흐니숲길 탐방을 위해 길을 나선 것이었다. 입구는 붉은 테이프로 막혀있었고,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탐방이 가능하다고 하여 조금 꺼림칙한 마음이었지만, 테이프를 넘어 숲길로 향했다. 그런데 10분 정도 걸어 들어간 곳에서 바닥에 흩어진 동물뼈를 발견하고 최근 읽었던 멧돼지 출몰기사가 떠올라 행선지를 변경한 것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만나게 된 물영아리오름은 마흐니 숲길을 향한 아쉬움을 가득 채워주는 탐방이 되었다.

 

 

살짝 비가 내리던 날이라 우비를 챙겨 입고 본격적인 탐방을 시작했다. 입구에는 탐방 안내소가 설치되어 있고, 길도 아주 잘 정비된 곳이라 불안했던 마음이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편안한 나무데크 길과 함께 넓게 펼쳐진 초원은 걷기에도 너무 좋고, 배경으로 삼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쉬운 길을 벗어날 무렵 길이 양 갈래로 나뉘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계단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천여 개에 달하는 계단 입구에서 위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쨍쨍한 날보다 덜 힘들게 느껴지긴 하지만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잠시나마 그곳에 서서 녹슨 로봇의 다리처럼 삐걱 거리는 내 다리에 기름칠을 한다. 그렇게 잠시 쉬면서 쉼터에 있는 글을 한 번씩 읽고 나면 물영아리 습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올라갈 용기가 충전된다.

 

두 번 정도 쉬면서 올라가니 나무들이 뒤엉킨 사이로 환한 빛이 들어오며 계단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그때부턴 다시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습지 오른쪽으로 가면 능선길이다. 습지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날따라 안개가 자욱한 게 습지를 더욱 신비로운 곳으로 만들었다. 시야가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습지의 윤곽을 즐기는 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떨어지는 빗방울과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잠시 식힌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는 능선길을 선택했다. 내려가는 동안 처음부터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덜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많이 가파르지 않은 길을 천천히 돌아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아름다운 삼나무길에 들어섰다. 아직 얇지만 하늘 위로 길쭉하게 솟은 삼나무와 자욱한 안개로 몽환적인 숲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오히려 더욱 좋은 날 그동안 아껴뒀던 오름을 다녀올 수 있게 돼서 더욱 얻을 게 많았던 탐방이다. 이제 한 번 올라봤으니 또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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