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신흥리 동백마을 동백숲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3월말 제주에는 화사한 봄꽃 소식이 가득하다.
노란 유채꽃뿐만 아니라 팝콘 같은 흰 매화 그리고 자주빛 목련 등 제주는 육지보다 발빠르게 봄의 터널을 향해 달리는 듯 했다.
화려한 꽃들로 수채화 물감을 흩뿌려 놓은 마냥 봄의 기운이 제주로 스미는 가운데, 가장 늦게 동백꽃이 개화해 3월의 제주, 상춘곡을 노래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고 파스텔 톤의 봄꽃 사이에서 붉디붉은 겨울 꽃 동백이 수줍은 듯 자리한 비밀의 숲을 찾았다.
비밀의 숲이 자리한 곳은 바로 제주의 남쪽 중산간 마을인 신흥2리 동백마을.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감귤농사를 짓는 동백마을에는 300년의 마을 설촌터이자 제주도 지방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마을 한가운데 조성되어 있다.
구불구불한 올레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 짙은 회색의 현무감으로 켜켜이 쌓아올린 돌담 아래로 붉은 동백꽃이 겨울을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전날 제주에 고사리 장마로 폭우가 쏟아진 때문인지 돌담위에도 올레길에도 동백꽃이 후두둑 떨어진 모습을 보니, 문정희 시인의 동백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꽃이 질 때도 꽃잎을 흩날리지 않고 꽃봉오리째 ‘툭’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백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순 없을 거 같다.
한참을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 동백꽃을 뒤로 하고 천천히 걸어 동백숲으로 향했다. 마을 과수원 안에 자리한 이곳은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의 작은 숲이지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동백나무의 위용을 올려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을까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나무데크로 된 산책로 위로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은 꼭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화려했다. 그렇게 생각지 않게 꽃길을 걸어 다시 동백 숲 입구로 나오기까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는다.
1년 뒤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마을을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동백마을방앗간. 방앗간은 겨울이면 마을주민들이 모아온 동백씨앗으로 기름을 짜는 곳으로 2009년 마을공동사업으로 시작되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동백숲과 동백마을방앗간을 돌아보니 마을의 자원을 발굴해 가치를 높이는 일을 주민들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제주 동백, 그리고 내년을 다시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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