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과 알오름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울음
대한민국에서 최남단에 있는 오름인 송악산은 태어난 이후
줄곧 고난과 아픔을 달고 살아온 오름이다.
제주도의 남서쪽 끝자락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거센 파도의 시련으로 온 몸이 패이고,
패인 몸으로 슬픈 역사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오름.
그래도 오름의 끝자락 절벽 앞에 서면 저절로 흥얼대어지는 노래.
세찬 비바람에 내 몸이 패이고 이는 파도에 내 뜻이 부서져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
인 것을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송악산은 초기의 수성 화산활동과 후기의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차례로 거친 화산으로 먼저 폭발한 큰 분화구 안에
두 번째 폭발로 지금의 주봉이 생기고 거기에 작은 분화구가 생겨난
이중화산체로 주변 지질특성이 특이하고,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남쪽은 외륜이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소멸되어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다.
중앙화구 남측은 낮은 언덕으로 침식되어 있고,
그 앞쪽에는 몇 기의 왕릉과 같은 언덕들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바닷가 절벽 상에서 붉은 송이를 노출시키고 있는
언덕을 붉은오름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올라가 볼 수 없는 표고104m의 주봉은 송악(송이오름)으로,
소나무가 울창하여 힐링 산책로로 조성된
표고80m인 부봉은 저벼리오름으로 구분하여 부른 적도 있었다.
송악산 분화구는 암메창 또는 가메창이라고 부른다.
비록 정상에는 오를 수 없지만 외륜을 따라
해안절벽 위로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면
가까이의 가파도에서 멀리 마라도와
그 너머 망망대해까지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오름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또한 여름에는 각종 들꽃의 향기를 맡으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수국길을 걸을 수도 있다.
송악산 일대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말기
본토 침략의 최후지점으로 삼았던 곳으로,
중국 폭격을 목적으로 건설했던 비행장과 비행기 격납고 잔해가
콘크리트 토치카처럼 산재해 있고,
미군 항공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고사포 진지와 포진지,
해안단애의 절벽 아래에는 수십 군데의 해안참호가 있다.
송악산의 북쪽에는 작고 나지막한
3개의 말굽형 화구가 나란히 줄지어 분포되어 있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 때문에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 오름들은 송악산 외륜을 둘러싸며 산이수동 마을과 인접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작고 아담한 동산들을 알오름이라 부르고 있다.
산이수동 마을 가까이에 있는 것이
위치상 동쪽에 있다하여 동알오름이라 하며,
가운데 오름을 셋알오름,
비행장 근처 동네인 '알드르'에 붙어있는 오름을
섯알오름이라 부른다.
알오름은 일본침략시대 때는 비행장 등의 군시설,
광복 이후에는 예비 검속에 의한 주민 학살터 등
주민의 한이 서려있는 오름 이다.
'조상은 일백이요 자손은 하나'라는 뜻의 '백조일손(百祖一孫)’묘역은
시신을 발굴했으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안덕면 사계리 공동묘지 앞에 함께 묘지를 조성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송악산은 절벽에 파도(제주어로 ‘절’)가 부딪쳐 울린다고 하여
'절울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는데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남의 나라 전쟁준비에 내몰린 주민들의 노동력 착취,
생활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근대사의 어두운 시절을 겪으며
거쳐야 했던 아픈 과거의 상처들을 생각하면 절이 운다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듯도 하다.
오름 위에 서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바위와 절의 울음을.
사진, 글 제공 양영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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