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는 그곳, ‘알뜨르비행장’
알뜨르비행장
아픈만큼 더 아름다운 다크투어리즘의 성지
이제는 제주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한번 꼭 가봐야 할 관광지 정도일까? 제주라는 섬은 동서남북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많이 아팠던 시간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곳 중 하나.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하고 있는 알뜨르 비행장을 찾아가본다. 이번 일정은 기존의 다른 여행들과는 다르게 조금은 묵직한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기 위한 여정이 아니기에 이 글을 함께하는 이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지금은 넓게 펼쳐진 밭들너머로 산방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한라산까지, 그야말로 제주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고 있듯이 이곳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닌 또 다른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격납고.
알뜨르비행장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 일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군용비행장으로 활용되던 곳이었다. 알뜨르 라는 말은 ‘아래벌판’ 이라는 의미를 가진 예쁜 말이지만, 곳곳에 격납고가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알뜨르의 너른 벌판은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이 있는 정뜨르와 함께 대표적인 일제의 군사시설이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모슬포 주민들이 동원되어 활주로를 비롯하여 비행기 격납고와 탄약고 등을 10여년에 걸쳐 세웠다.
중일전쟁을 벌였던 일본은 알뜨르를 전쟁의 전초기지로 삼았고, 일본을 떠난 비행기는 이곳에서 주유를 하고나면 상하이, 베이징, 난징까지 공습이 가능했다고 한다. 전선을 남쪽으로 확대해 나가던 일본은 진주만공습으로 시작된 미국과의 전쟁을 위하여 남부해안을 군사기지화하면서 원래 66ha였던 알뜨르비행장을 264ha 규모로 확장했다.
패색이 짙어진 일본이 극단적으로 내세운 전술이 바로 카미가제(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공격을 한 일본 특공대) 이며, 그 조종훈련이 이곳 알뜨르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지만, 찾아갔던 그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의 한 부분이었다. 알뜨르에는 현재 약 20여기의 격납고가 남아있는데, 세월이 흐른만큼 자연스레 제주에 어우러지고 있다.
알뜨르는 다크투어리즘의 장소로 새로이 알려지고 있다. ‘다크투어리즘’ 이란, 전쟁이나 테러, 인종말살, 재난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을 일컫는다. 일본의 군사시설인 알뜨르 비행장 뿐 아니라 4.3사건의 잔혹한 현장이 인근에 있기에 다크투어리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아픈 시간들을 이제는 다크투어리즘 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되고 있지만, 알뜨르에는 또 다른 아픔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당시에 알뜨르 비행장은 3차에 걸쳐 조성과 확장이 이루어졌다는데, 이 과정에서 일제의 강압으로 마을과 농경지가 무려 3개월 여 만에 모두 매입되었다고 한다. 이에 강제적인 방법이라는 시각이 있다. 어쩌면 그 당시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압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확장공사에까지 강제 동원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이 된 이후 강압에 의해 빼앗긴 터전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국가에 귀속된 땅에서 주민들은 임대계약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는 놀랍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픈 과거를 생각나지 않게 했었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열심히 오늘의 시간을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역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아파하고 함께 공감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은 아니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관심이 있어서 시작된 여행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관심. 눈길을 돌려 바라봐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가을을 입고 있는 알뜨르 비행장은 조용하고 밝은 모습이다.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와 같은 느낌이 든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아직 조금은 따가운 햇살을 함께 느끼며, 길을 따라 걸어보면 어느 시골의 할아버지 댁으로 걸어가는 기분이다. 길가로는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물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멀리 산방산과 한라산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굳이 무거울 필요가 없다. 지금의 이 계절을 편안하게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올레길 투어 못지않게 생각의 정리를 위해서도 좋았던 공간이다. 제주의 가을여행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돌아보는 그런 여행 어떨까?
사진, 글 제공 김형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