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근산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자
제비가 사라졌다.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날’인 "삼짇날"이 지났지만
강남 갔던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면 전깃줄 위에 떼 지어 않거나
날렵한 모습으로 낮게 비행하며
비 날씨를 예보하던 제비가 안 보이는 것이다.
어릴 때 외갓집 처마 밑 둥지에서 입을 쫙쫙 벌리고
목청을 드러내며 시끄럽게 울어대던 제비 새끼들의 모습은
앞으로 추억으로만 있게 되는 걸까.
제비도 떠났으니 이젠 사람 차례인가?
아니면 제비가 둥지를 짓고 살던 집에서 사람이 떠나가서
제비도 둥지를 버리고 떠나간 것일까!
제비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한라산 등성이를
쓸고 내려오는 겨울의 하늬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강남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마파람을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오름. 고근산을 올라보자.
서귀포시 서호마을과 신시가지 일대를 감싸고 있는
높이가 396미터인 고근산은 넓고 둥그런 모양의 몸체와
그다지 가파르지 않는 경사를 가지고 있는 오름이다.
산 위에 야트막하게 팬 아담한 원형의 굼부리는 널따란 접시마냥 곱다.
올레코스가 오름의 북쪽 기슭에서
남쪽 기슭으로 이어지고 등산로와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서귀포 시민들의 산책과 운동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는 오름이다.
오름의 중턱과 정상부에는 산책을 하다
운동도 할 수 있는 기구들도 놓여 있다.
서귀포시의 서귀포시청 제2청사 북쪽 중산간동로(1136번도로)가
시작되는 곳의 고근산 입구에서 고근산로를 따라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오름이다.
오름은 전체적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오름 중턱에는 삼나무, 편백나무, 해송,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이 조림되어 있고, 정상부근에는 자연석과 어우러져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산철쭉 등이 자생하고 있다.
고근산은 고공산, 孤根山, 好近山 등 예로부터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왔는데,
“고근”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공산”은 “고근산”의 변음으로 보이고,
古公山, 古空山은 그 변음을 한자 표기에 반영한 것이다.
민간에서도 '고공산'이라 하는 사람이 많다.
호근산은 호근에 있는 산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하나 후대의 민간어원설이다.
오름 남서쪽의 입구에 이르면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만나고,
오름의 정상 전망대 위에 오르면 남쪽으로 굼부리 너머
새끼 하나를 데리고 떠 있는 범섬과 문섬, 섶섬을 보듬고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서귀포 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한라산 자락의 시오름과 어점이악, 산벌른내를
너머 방애오름과 구름 모자를 쓴 한라산 부악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제주도의 남서쪽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오름이다.
단, 날씨가 좋아야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마는.
전망대 앞의 얕고 넓은 굼부리를 보노라면
전설상의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심심할 때면
한라산 부악을 베개 삼아,
고근산의 굼부리에는 궁둥이를 얹고,
앞바다의 범섬에는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는 전설이 이 굼부리의 아름다운 선을
육감적으로 표현해 준다.
둘레가 약 700여 미터나 되는 굼부리를 중심으로
삥 둘러 산책로가 있고 군데군데 전망 포인트도 있어
심심할 겨를이 없는 오름이다.
오름의 서쪽으로 악근천이 흐르는데 비가 많이
올 때에만 폭포가 된다는 엉또폭포가 있어
제주관광의 핫한 포인트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엉또는 높이가 20여 미터 되는 깎아지른
반원형의 큰 암벽으로, 서호 쪽에서는 엉또라고 부르지만
용흥 쪽에서는 오란도라고 부른다.
오름의 동쪽에는 울창한 상록수 숲 위로 두 개의 뿔을 내놓고 있는
각시바위가 미악산을 배경으로 서있다.
남동사면 중턱의 '머흔저리'라고 하는 곳에
예전에는 국상(國喪)을 당했을 때 곡배하던 곡배단(哭拜壇)이 있었고,
남서사면 숲비탈에는 꿩사냥 하던 강아지(강생이)가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강생이궤라는
수직동굴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제비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지만,
햇살 가득한 봄날 따뜻한 남쪽나라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고근산을 올라보자.
사진, 글 제공 양영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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